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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분하게.
    20**_일기 2020. 5. 12. 19:59

    1. 요며칠동안 짧게나마 기록하고 싶은 (기록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2018년에 연구실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끝난 후, 수집한 데이터로 일하는 여성의 건강, 더 자세히, 노동환경과 여성노동자의 여성건강 및 정신건강을 주제로 논문작업을 진행해왔다. 여성노동자 건강의 중요성이야 여러 기존문헌에서 다루어졌으나, 산업안전보건분야에서 주목받지 못한 변수로 작업을 하면서 종종 벽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주장이 명확해질수록 이 주제에 대한 애정이 생겼고, 파고 파다보니 한 명, 두 명.. 몇몇 연구자의 이름들이 계속 나오고,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이 주제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연구자들을 (논문으로) 만나다보니 동지애(?)까지 생겼다. 공저자들과 족히 30번은 넘게 회의를 하며, 원고를 겨우 마무리했다.

    2. 나름 진보적인 국제학술지에 원고를 제출했다. 24시간도 지나지않고 (시차를 고려하면 한 3-4시간...) 거절메일을 받았다. 그야말로 파워거절.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당연히 받아줄 것이라 생각했던 내 자만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저널을 찾아 투고하기를 반복.. 마지막이겠지 생각하며, 마지막 저널에 투고할 땐 문헌리뷰하면서 봤던 연구자 2분을 지정해, 이 분들이 내 원고를 검토하길 바란다는 의사를 표했다. 4주가 지나도 답이 없어 공저자들과 나는 '아 리뷰어들이 긍정적으로 검토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다'했다. 8주 정도 지나, 저널로부터 거절 메일이 왔다.

    3. 두 명의 리뷰어에게 원고에 대한 피드백이 함께 왔다. 첫번째 리뷰어는 내가 지정한 연구자 중 한 분으로, 그 분의 comments에는 내 연구 주제에 대한 애정과 격려가 가득, 정말 가득담겨 있었다. 여러번 거절을 경험했던지라, 많이 위축되어 있었는데, " I also give this feedback because I think this paper will be of interest to the global menstrual hygiene community." "I LOVE the provision of the policy context in the discussion. This is fantastic." 이런 말은 이 길을 먼저 가 본 선배 연구자가 후배에게 당신의 작업은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연구라는, 힘이되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4. 두번째 리뷰어의 의견은 전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무엇보다 두 명의 리뷰어들의 코멘트를 봐도 저널에서 왜 거절을 했는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지도교수님과 함께 저널에 다시 요청하기로 했다. 받아들일 수 있었던 코멘트들은 원고에 모두 반영하고,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주장과 근거로 정리하고, 어제 저널 편집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5. 아직 저널로부터 답변은 오지 않았다. 투고하고, 거절 메일을 받고, 리뷰어 의견을 반영하여 원고를 수정하고, 중간에 공저자들과 논의하고, 저널에 메일을 보내는 시간 동안 좌절했다가, 긴장했다가, 잠시 설레었다가를 반복했다.

    6. 교신저자이자 지도교수님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주었고, 함께 버텨주어서 감사했다. 논문이 출판되면, 에디터에게 어떤 단어로, 문장으로 쓸지 고민했던 모든 과정들이 이 시간들을 더욱 의미있어질라고 응원해주셨다. 어떤 벽은 부딪치기 전에는 보이지 않고, 부딪쳐서 몸에 난 상처로만 존재가 확인되는 벽이 있다고. 나는 이 주제를 포기하지 않을거고, 그렇담 저널이 또 거절을 하더라도 이 거절을 포함해 나만의 좋은 이야기가 되어줄 것이다. 연구자에게 '좋은 이야기'는 연구를 지속하게 해주는 힘이기도 하니까. 이길 때까지 계속해서 결국 이겨야지.

    7. 메일을 보내고, 영화를 한편 봤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 루즈 베이더 긴즈버그. 영화가 좋아 두번을 보고, 주인공 다큐를 찾아봤다. 이 여성으로부터 배운 점. 차분하게, 침착하게, 화를 내지 않을 것. 30년 넘게 까불기+사소한 것에 분노하기의 대명사였는데, 며칠동안만이라도 기억하고 연습해야겠다.

    8.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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